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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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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숫자가 많은 곳이라 여기를 어떻게 할라는 놈은 다 죽는다 했어”

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저걸 팔아버린 마을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저걸 팔아버린 마을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조금나루 주민 좌담.JPG

무안의 조금나루는 한때 주민들이 아끼고 자랑하는 명소였다. 지금은 초라하다. 입구에 ‘조금나루유원지’라 새긴 표석이 남아있을 뿐 관리한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우산각은 바닥이 내려앉아 있고 놀러온 사람들이 불을 피웠던 잔해도 그대로다. 애초에 국유지였던 땅을 마을에서 사들이고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사유지로 남았다. 관리가 부실한 건 주민들도 안다. 내심 마뜩찮지만 팔아먹은 탓으로 돌리면서 입을 다문다. 그래도 송현마을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참석한 분들은 조심스러웠다. 몇몇은 이름을 쓰지 말라고 했다. 주민1 ■ 주민들 의견을 들어본다고요? 내가 아무래도 나이가 좀 많고 그래서 조금나루에 대해서 더 알고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 조금나루가 옛날에는 나이 먹은 어르신들이 진짜 자기 집보다 더 아끼던 곳입니다. 어느 날 강아무개라는 외지 사람이 광업허가를 내갖고 모래를 퍼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모래를 못 퍼가게 할라고 아무리 막아보는데도 안되더라고. 내가 이장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3공구로 갔어. 가서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이러이러해서 왔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뭔 과장을 나이롱 공장에서 따갖고 온줄 아냐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아하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제일 밑에서부터 말해야 되는디. 과장한테 막 가니까 멍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뭔 말도 못하고 행정적으로는 도저히 이것이 안되는 쪽으로 얘기가 되니까 다시 돌아왔어요, 결국 여기 주민들이 데모를 해, 못 퍼가게. 그러면 무안경찰서에서 막어. 그러면 또 어쩔 수 없이 밀려와. 두어 차례 그랬어. 그런데 어느 땐가 해역사에서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그래서 가보니까 왜 그것을 못하게 하냐고 반협박적으로 나한테 그러더라고. 그래서 당신들 뭔 소리 하고 있냐고, 당신들은 군인이고 우리 주민들은 우리 살림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뒤에 송현 어르신 중에 김아무개씨라고 있어. 그분들이, 자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겄다, 그래서 밤에 학다리까지 갔는디 경찰들이 있응께 이러도 저러도 못허고 삽 들고 간 사람, 호미들고 간 사람, 뭐 고무신 신고 장화 신고 이렇게 학다리 역에서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버린 거요. 청와대 간다고. 우여곡절 끝에 앞으로 모래 퍼가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조건하에 경찰에서 대준 버스를 타고 오니까 전남도에서 마을까지 데려다주면서 그 문제가 해결되었어요. 그런디 저것을 강아무개라는 사람이 잡종지로 등록을 시킨 상태였어. 모래를 퍼갈라고 필지를 나눠서 잡종지로 딱 해놨어. 그것을 국세청에서 이걸 부락에서 사라, 그렇게 통보가 왔어요. 그때 돈 6백만원인가를 주고 송현3리 앞으로 산 겁니다. 샀는데 왜 팔게 되었는가 그 원인까지 얘기를 해줄게요. 거기에 장사를 할라고 들어간 사람들이 있어갖고 부락에서 말하기를 50평만 갖고 장사를 하되 1년에 부락에다 임대료를 내라.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이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면적을 더 차지하면서 임대료를 안주는 거여. 그래서 어르신들이 야 이래서는 안되겄다, 우리가 없어지고 나면 이 조금나루에서 장사한 사람들이 자기들 것 만들어 불겄다, 그러니 이걸 팔아버리자. 이렇게 얘기가 돌아갖고 저걸 팔아버린 겁니다. 진짜 참 아쉽지요. 팔아서는 안 될 것을 판 겁니다. 근데 지금에 와서 저도 조금나루에 한번씩 내려가 봅니다만, 옛날에는 저 조금나루가 사람이 살 곳이 아닙니다. 짐승이 살아야 돼. 해당화도 많았는데 없어져불고 선인장도 많았는데 관광객들이 전부 다 파가불고 그래서 없어져부렀어. 그래서 내가 이장할 때 면장하고 얘기해갖고 해당화 서식지를 만들었어요. 지금도 해당화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려가 보면 이런 생각만 듭니다. 왜 그러냐? 이놈의 사람들이 주말이면 앉을 데 설 데가 없이 꽉 차부러요. 갈 때 깨끗허니 치워놓고 가면 되는데, 그저 자기네들은 치운다고 치우겄지요. 그렇게 아무데나 놔두고 미화원들한테 실어가라고. 미화원들은 규격봉투도 아니고 뭔 마대에다가 담아서 쌓아놔버린 것을 실어가겄어요? 그래서 그런 것이 아쉽고, 부락에서는 이미 팔아부렀는디 아쉬워도 소용없고. 다만 저런 좋은 자연경관을 좀 깨끗하게 사용하시면 좋겄다는 그런 마음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땅을 매각한 이후에는 관리가 마을주민들의 몫이 아니고 땅 임자가 관리를 해야 되는데, 관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네요. 현 소유자도 무슨 생각으로 땅을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상태가 이렇고, 또 보시면 알겠지만 낙지공원을 조성하고 노을길 공사도 하고 있잖아요. 그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주민2 ■ 그것은 저희들이 볼 때 명칭을 해안도로라고 해놨는데 절대 이건 해안도로가 아니라 농로밖에 아니여. 해안도로라면 바다를 끼고 계속 돌아가야 해안도로지. 엄한데로 돌아서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하게 하는 것은 해안도로로 맞지 않아요. 낙지공원 같은 것을 조성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오게 할라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저희들이 볼 때는 그런 걸 개발하는 것을 좋게 안 봅니다. 왜? 사람들 와봐야 쓰레기만 모여. 쓰레기장 밖에 안된다는 거여. 사람이 많이 오게 되면. 그래서 그 전과 같이 좀 깨끗하게 해야 돼. 조금나루에 대해서는 솔직히 얘기해서 거기가 뭐 쓰레기가 가득 차든 말든 우리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음식물이나 뭐나 쌓여있다 보면 우리 부락까지도 공기가 오염되고 좋지 않겠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을 빨리 치워주고... 큰 호텔을 짓는다는 말도 있어요. 그런데 뭘 짓더라도 좀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야지, 더러워지면 우리 주민들만 피해를 보지. 사실상 넘어가부렀기 때문에 할 말은 아니지만. 주민3 ■ 전체적으로 우리 땅이 아니었고 옛날에는 절반이 국유지였거든. 근디 그것도 사실상 우리가 권리를 찾지 못하고. 우리가 몇 년 전에 해양수산과를 갔어요. 이걸 우리가 임대를 받겠다. 받아가지고 우리가 이걸 해보겠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까 그 사업자한테 임대를 줬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다가 다 넘어가 부렀다더라고. 그러면 왜 우리가 소나무 심어놓고 다 해놨는데 그 사람들한테 군에서 넘겨부렀냐 이거야. 주민4 ■ 그 때 그것이 국유지였는데, 군청에서 전 군수 때 여기다 호텔도 짓고 개발을 한다, 그런 계획을 넣어가지고 했기 때문에 수의계약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악 4천평인가 그것을 계획을 했는데, 그때가 좀 오래됐잖아요? 근데 아직껏 개발을 않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이 모양이 되어버린 거요. 옛날에는 여기가 진짜 엄청나게 사람들도 많이 왔지만 그때는 군청에서 관리도 하고 그랬잖아요. 근데 그 이후로 전혀 관리가 안되야분다 이것이죠. 저기 해제 송계는 군청에서 싹 다 매입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를 개발을 하겠다. 그러면 이왕 조금나루가 개인한테 떠나갔지만 여기에다 계획대로 하지 않으니까 다시 군청에서 매입을 할 수도 있제. 거기도 매입했으니까. 거기는 여기보다 땅이 더 넓어요. 그래서 이런 방안들을 주민들이 제시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관광지로 다시 만들어지면 주민들도 거기서 어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도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협의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해안도로 가다 보면 낙지공원 있잖아요. 그 앞으로 구조물을 쭉 내밀어 갖고 모래사장을 다 막아부렀어요. 그러면 그것이 옛날에 우리가 명사십리라고 안했습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은 망운 면민이나 송현 주민들이 의견을 냈어야 하는데, 군청에서는 자기들이 개발해 준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자연을 훼손시켜 버리면... 주민1 ■ 지금 생각하면 저걸 팔아버린 마을 주민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왜 이런 곳을 우리가 팔았는고. 저 자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와서 놀다가고 하는데. 이미 다 지나가버린 것이고. 주민3 ■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주민들한테도 피해가 와요. 낙지나 석화나 이런 해산물을 채취해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단 말이요? 특히나 낙지는 탄도만 낙지가 유명한디, 보니까 사람들이 안에서만 노는 게 아니라 바다로 들어가요. 고동을 잡네 게를 잡네 하고 들어가는 사람이 어떤 때는 빽빽해부러. 언젠가 한바퀴 돌다가 ‘그렇게 하면 여기 벌어묵고 사는 사람들이 어쩌고 살겄소, 그렁께 들어가지 마시오’ 그러고 말았는디. 어찌되었든 간에 부락이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안보게끔. 사실 우리가 소득을 낸다는 것까지는 생각을 안하지만, 피해는 안가게끔 해야 합니다. 생각해보시오. 농사짓는 사람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면 도로에 경운기 놓고 농약도 해야 된디 차사고라도 나면. 이런 현상이 나오게 돼요. 그래서 개인이 됐건 누가 됐건 빨리 활성화시켜야지 저렇게 계속 방치해버리면 부락에 무지 피해가 생겨요. 오래되면 될수록 좋지 않은 현상이 와요. 주민2 ■ 옛날에 저 도로가 생기기 전에, 방파제 만들어서 탄도로 들어가기 전에 그냥 자연으로 있을 때는, 동네 사람들도 마음대로 못 들어갔어요. 1년에 몇 번 들어가서 거기서 소나무를 간벌해갖고 부락에서 골고루 나눠서 불 때고 그랬어. 글안헐 때는 못들어갔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갈매기 알을 신차두(신발주머니)에다 한차두씩 주워갖고 오고 또 삐비를 엄청 뜯어오고 그랬어. 그러다 개발이 되니까 한가지는 사실 좋죠. 탄도 들어가는 뱃길도 좋아지고 편리해지고. 그렇지만 다 좋을 수는 없제. 개발을 하면 자연이 훼손되거든. 주민1 ■ 천년이나 만년이나 부락에서 갖고 있을 줄 알았는디. 저기가 원래 도로가 없었어요. 가운데로 물이 넘어. 그래서 부락민들이 음력 2월 초하렛날이면 삽을 가지고 모래를 쌓아올리고 그랬제. 이재현 군수랑 경찰서장이랑 한창 만조가 들 때 조금나루에 와주시오 해서, 보시오, 물이 처마밑까지 들어오는데 이대로 두면 부락이 뭐가 되겠습니까. 여기 사업을 좀 해주시오. 그래서 저런 돌담을 쌓은 겁니다. 그러기 전에 여기서 낙지축제를 했는데 한화갑씨가 와서 군수를 불러갖고, 이런 좋은 자리가 이런 상태로 되겄냐, 빨리 지방도로 승격시켜갖고 도로를 만들어라, 그래서 포장도로를 낸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포장도로도 안내고 했으면 조금나루 환경이 더 좋았을텐데. 좋게 만든다고 사정해서 길 만들어놓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저기가 쓰레기장이 되어버리고 환경이 엉망 되어버리더라고. 주민3 ■ 호텔이나 뭐나 들어서면 그 사람들이 관리를 하겄제. 그런데 바다오염은 어떻게 하나? 오폐수가 전부 바다로 들어갈 것 아니여. 주민5 ■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반대지만 부락 입장으로는 찬성이요. 개인적으로 피해를 봤기 때문에 골이 깊어요. 내가 거기서 횟집하다가 나온 사람이요. 거기서 장사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내가 소나무 찍어놓은 것, 사진이 많습니다. 나오면서 이 소나무 사진 다 찍어놓고 느그들 한그루라도 건들면 무조건 민원 넣는다 했소. 그때가 2009년쯤이요. 그때 내 건물 포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철거해부렀소. 화장실만 남겨놓고. 나는 소송에서 져갖고 이사비용도 못받고 나왔소. 그 사람들이 남은 국유지도 편법으로 다 사부렀어요. (낙지공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떻게 저 모래사장을 침투해서 지어부렀을까. 나는 바다에서 낙지를 잡으면서 그걸 봤어요. 내가 낙지잡이 전문이요. 그쪽에서 보니까 뭣이 툭 튀어나오더라고. 아직 낙지 모양이 세워지기 전이여. 공사가 이상 모래를 어마어마하게 침범해불고, 저기는 도대체 뭔 빽이 있어갖고 저러냐 싶더라고. 주민1 ■ 낙지공원이라고 돈을 얼마를 들여서 만들었는가 몰라도, 아무리 좋게 만들어놔도 손님은 조금나루로 오지 거기는 안갑니다. 주민5 ■ 조금나루는 그 뒤로 발전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물론 최초 잘못은 우리 부락에 있죠. 조금나루를 팔아부렀으니까. 만약에 조금나루가 안 팔렸으면 아마 무안의 최고 자리로 발전했을 거요. 저런 땅 없어요. 소나무도 다 살리고 하면. 주민1 ■ 옛날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조금나루가 칼입니다. 저 너머가 범바위 이쪽은 범, 그러니까 바위하고 범이 침범해오고 싶어도 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 온다 그랬어요. 그리고 조금나루는 모래 숫자가 많은 곳이라 여기를 어떻게 할라는 놈은 다 죽는다 했어. 그 말마따나 거기 들어간 사람들 하나도 성공한 사람 없어요. 주민5 ■ 이재현 군수 시절에 여기서 낙지축제를 했어요. 2회는 톱머리에서 하고, 3회는 또 여기서 했어요. 그때 군수가 이 말을 했어요. 조금나루는 천혜의 자원이다. 그 양반이 떨어지고 나서부터 우리 무안의 축제가 줄어들었어요. 낙지축제는 신안 압해도로 넘어가부렀고. 다음 군수 10년 동안 조금나루 죽고 톱머리 살고. 풍경으로는 톱머리가 잽도 안되지만, 그 뒤로는 톱머리가 살게 됐어요. 주민2 ■ 소유권을 가진 분이 조금나루를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사정할 일은 아니지만. 군청에서라도 압력을 넣어서 관리라도 좀 해주면, 낙지나 해삼이나 오염이 덜 될 것 아니냐. 그런 것을 건의하고 싶네요.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 가족이다, 내 부모다 생각하고 일을 하지요.”

돌봄노동계의 베테랑, 요양보호사 신희순   

“내 가족이다, 내 부모다 생각하고 일을 하지요.”

최근 화제가 되는 공익광고가 있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성이 “아줌마~”라고 부르자 배우가 등장해 랩을 하기 시작한다. “아줌마 no! 요양보호사! 국가 자격 취득한 전문가! 돌봄 필요해? 싹다 케어 해! 식사, 약 챙겨드리고 병원도 같이 가는 마스터, 요양보호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제작한 이 광고는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7일 행정안전부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처음으로 청소년 인구를 추월했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인구가 857만명으로, 846만명인 청소년(9~24살) 인구를 넘어선 것이다. 70세 이상 인구도 572만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늘었다. 고령사회란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 고령 인구는 16.6%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란 게 따로 있을까.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이것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인간이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가정의 지극한 돌봄이 필요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란, 숨쉬기 정도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다.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 어른이 된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고, 병들고, 약해진다. 다시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국가의 복지시스템이 미약했을 때, 돌봄의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 있었다. 아이든 노인이든 사회적 약자를 보살필 의무는 전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이 떠맡아야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많은 국가들이 국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돌봄이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국가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책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돌봄노동은 너무나 오랫동안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국가가 공인하는 자격을 취득한 사회복지 전문가들을 향한 인식 수준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사회복지 전문가인 요양보호사를 “아줌마”가 아닌 “요양보호사님”이라고 부르자는 공익광고도 그런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무안읍에 거주하는 신희순(70)씨는 20년 가까이 간병 업무를 해온 베테랑 요양보호사다. 두 번째 동행 손님으로 그를 만나보았다. 내 집이다 생각하고 하는 일 신희순씨는 방문 요양보호사다. 대개 노인분들이 혼자 살고 계시는 자택으로 일을 나간다. 이제 막 식사를 마쳤다는 할머니와 희순씨는 방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희순씨에게 요양서비스를 받고있는 할머니는 “참 잘한다”며 연신 희순씨를 칭찬했다. “한집 방문을 하면, 두 시간 반쓱 일을 하지요. 어떤 일을 주로 하냐고? 다 해, 다. 내 집이다 생각하고 해 드려야제. 할머니들 뭐슬 못허니까. 여그만 근게 아니라 다 그래요 아픈 노인들은. 진짜 험한 데를 다 댕였어. 봐주던 할머니가 시설을 가도, 시방도 마음이 안 편해. 불쌍하고 그래지드라고.” 내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매일 부엌에서 방까지 대변으로 더럽히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했다. 본인이 실수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래도 신희순씨는 탓하는 소리 한번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3년을 그렇게 돌봐온 할머니가 결국 시설로 들어가야 했을 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서운해 하지마, 미안해 하지마 “그 할머니는, 미안해서 밥도 잘 안자실라 그래. 그러면 내가 엄마, 얼른 먹어. 먹어야 돼, 이러지. 그러면 또 미안해, 미안해서 그래. 자기가 안먹을라하제 똥이 나온께. 그래도 또 한 번 드시면 잘 잡솨, 잡수기는. 내가 가서 손 장갑 찌고 그 똥을, 다 내가 목욕시키고 해서 들여놓고. 나는 할머니한테 그래. 엄마 그런 생각 하지 마, 서운해 생각 하지 마, 엄마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마. 그래갖고 시설을 보낸께 저런 사람은 어디가서 사끄나 생각한께. 오늘도 그랬당께. 어째 돌아가셨으꺼나? 안돌아가셨으꺼나? 보고 싶다. 할머니 아들이 할머니를 보고 도저히 안되겠다, 하니까 시설로 모시고 가브렀지. 당신은 안 갈라고 했어. ‘나하고 같이 살믄 안되겄는가?’ 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같이 삽시다, 그랬어. 근데 자식들이 상황을 보니까 너무 힘든께 갖다 넣었제. 그게 그렇게 가슴 아프드라고. 정이 들어븐게 그런 거 같어. 그렇게 똥을 싸고 뭐더고 했어도..” 변을 치우는 것, 식사를 챙기는 것부터 목욕을 도와드리는 것까지.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아이의 성장을 돕고 있다면, 신희순씨는 노인들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잘 지낼 수 있도록,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가면 일단, 식사를 하게끄름, 밥 세끼 잡수실 수 있게. 먹을만큼 밥을 해가꼬 차라드리제. 집집마다 네군데를 돌아요. 밥도 집집마다, 그날 반찬 딱 챙겨다가. 그러니까 할머니들이 그래싸요. 너 같은 사람 어디가 있대? 이렇게. 밥도 귀찮다고 많이쓱 하는 게 아니라, 딱 먹게끄름 해주니까 고맙다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식사도 챙겨드리고.. 그러다 돌아가시면 내가 그만두고 나오는거지.” 이전에도 비슷한 업을 하셨냐고 묻자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참모로, 식당에를 좀 다녔어요. 내가 애들이 딸이 다섯이나 되었거든요, 연년생으로. 그래갖고 그 애들을 가르키려고, 내가 못 배웠으니까. 새끼들 갈켜야쓰겠다 마음을 먹고 참모로 몇 년인가 댕였죠. 반찬도 하고, 식당 관리도 하고. 우리 아들이 시방 스물 일곱인께, 일 자체를 시작한 지는 꽤 되았죠. 어렸을 때 우리 아들이 하는 소리가, 엄마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냐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별 안 해본 것도 없이 다 해 봤다”는 그는 집과 일터를 오가며 하루에 세 시간도 채 잠들지 못했다. 자신이 못 배웠으니 아이들은 학원도 보내고, 뭐든 가르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 고생을 아는 자녀들은 이제 집에서 쉬시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희순씨는 ‘집에가 있으면 뭐덜 것이여.’라며 웃었다. 당신은 나한테 의지하고, 나는 당신한테 해주는 것 “아침에 일찍 맡은 사람은 신장 투석을 해.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나는데도, 아파서 몸을 못 해. 진짜 너무 젊은 사람이 그런께 짠하기도 허고, 안타깝기도 하고. 치료하느라 병원에 왔다갔다를 하는데, 내가 그랬어. 언니 먹고 싶은 거 말해, 내가 해드릴게. 그러니까 미역국을 한번 끓여줄래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국을 끓여갖고 간디, 못 잡수더라고. 그래서 언니 그러면 죽을 좀 써줘볼까? 그랬어. 병원에서 하는 말이 투석하다가도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언니가 맘이 쫌 안좋은갑드만. 그래서 내가 언니! 뭐 그런 생각을 하시오? 언니는 젊은께 이기고 사쇼. 이랬지. 병원에서 나쁠 수 있다 한다고, 나까지 그러면 안되제. 어ᄄᅠᇂ게든 안심을 시켜줘야지. 언니가 힘들어 보이니까 주말 동안 마음이 영 안 좋더라고. 그래서는 초무침을, 미나리 한 단 사가꼬. 요만한 놈에다가 낙지 두 마리 넣어서 해갖고 간게 눈물이 뚝뚝 떨어져. 뭐라한가 보니, 먹고 싶어 죽겠는데 그놈을 해갖고 왔다 이 말이여. 그래서 내가 언니, 그런 생각 하지 마. 내가 먹을라고 했어. 그러니까 고놈 잘 잡수라고. 어째 눈물바람으로 그냐고, 하지 마라고. 나는 더 가슴 아프다고. 투석하러 가믄 도살장 들어가는 기분이 난다 그래. 그런 말 들으면 내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요. 자식들이 같이 살면 좀 나을텐데. 자식들 다 멀리 살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언니)은 나한테 의지하고, 나는 당신한테 해주는 거지.” 아프고 병든 사람들의 곁을 지키기란 쉽지 않을 터. 말하는 내내 신희순 씨의 눈가는 눈물로 가득했다. 요양 보호를 필요로하는 노인분들은 몸이 정정하지 않다. 몸이 아파 끼니를 제대로 넘기기도 힘들고, 혼자서는 씻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거의 혼자서 하루를 외롭게 보내고 있다. 그런 그들을 생각하니 감정이 북받쳐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어떤 환자를 만나든 “내 가족이고 부모” “할머니들이 나한테 의지를 하죠. 매일 보니까. 말하다가 보면 나도 울고, 할매도 울고, 같이. 내 부모다 생각하고 해요. 그런거 아니면 일을 못해. 일을 하면서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지마는 일을 하면서 할머니한테 그 흔적을 안해야지. 내가 좀 나쁘다고 하면, 그것은 안되니까요. 애로점이 많이 있어요. 어르신들은 다 가족들이랑 같이 안 살고요. 그럼 이제 하루에 보시는 게 나뿐이니까. 가면은 시간도 빨리 가네, 또 갈 데 다찼네.. 이러지.” 신희순씨는 어떤 환자를 만나든 “내 가족이고 부모다”라고 생각하고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한 직업적 소명 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가 일에 진심을 쏟기 때문에 그가 보살피는 어르신들은 그 누구보다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신희순씨는 평일에 하는 요양보호사 업무 외에도 따로 봉사활동도 다니며 지역사회를 보살피고 있다. 희순씨는 헤어지는 길에 직접 찐 고구마 한 봉지를 품에 안겨주었다. 그의 마음처럼 따끈따끈한 고구마였다. 신희순씨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왜 그가 돌보는 사람들이 그를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작은 체구의 그가 지니고있는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진심과, 투철한 직업의식이었다.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안읍 전통시장에는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천장 가림막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해 전체적인 소비시장 위축으로 장사에 고충

무안읍 전통시장에는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장사꾼은 장사가 안되면 힘들제” 무안 전통시장에서 장사를 오래 해왔다는 정재철(58)씨는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힘든 것은 장사가 안되는 것이라 했다. 직접 농사를 지은 채소들을 가져다가 판매하는 김연숙(67)씨도 같은 말을 했다. “물건이 안팔린께, 그게 어려워” 코로나19의 여파로 전체적인 소비시장이 위축되어 너도, 나도 힘들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시골은 갈수록 인구가 줄어들다보니 시장 장사가 힘든데, 코로나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1983년 무안읍 서라아파트 인근에 개장해서 3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무안전통시장은 2016년 무안읍 성내휴먼시아 아파트 인근으로 옮겨왔다. 투입된 예산은 192억원. 규모를 늘리고 노후화된 시설을 현대화하는 목적이 컸다. 그렇다면 상인들은 무안전통시장 이전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까? 아몬드 오천 원어치를 사려고 온 단골손님에게 단 두 마디로 만 원어치를 품에 안기는 노련한 장사수완을 가지고 있는 황두매(70)씨. 자신이 파는 물건에 자부심을 품고 정직하게 장사한 덕분에 꽤 많은 단골손님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는 장이 이전한 이후로 장사가 더 안된다고 했다. “교통편이 안 좋아. 읍내에 있을 때는 버스가 왔다 갔다 했거든요. 지금은 버스가 다니는 곳이 아니라 교통량도 줄었고....” 시설은 만족스럽냐고 묻자 잘 되어있는 편이란다. “시설은 잘돼있지. 근데 비가 오면 비가 들이치고 난리가 나. 그런 애로사항은 감내해야지. 그렇지만 애초에 잘 만들었어야 했어..” 다른 상인들도 교통편에 대한 점을 지적했다. 예전 장소는 접근성이 좋아서 왕래하기가 쉬웠고 군내버스도 오고 가는 장소이다 보니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시장이 이전하고 나서 시설이 깨끗해져서 환경적으로 좋은 점을 느끼는 상인들도 많겠지만, 그만큼 불편한 점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상인 모두가 소리 높여 지적한 사항은 전통시장의 천장 설비 문제였다. “처음부터 시장 설계를 잘못한 것 같다”는 의견이 주였다. 전통시장 천장 시설이 벌어져 있는 구조라 틈 사이로 비가 오면 다 들이치고, 눈이 오면 눈이 차버린다고 했다. 비 가림이 잘 안돼서 비와 바람, 눈과 바람이 동시에 들이치는 날은 거의 장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상인도 있었다. 오일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한 지역만이 아닌 인근 지역들을 돌며 장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곡성군 같은 경우에는 시설이 아주 잘 되어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니까.” 채소를 파는 김정자(79)씨는 다른 지역 전통시장의 예를 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전체적으로 장사가 힘들다는 어두운 얘기 속에서도 따뜻함은 있었다. “전통시장이라는 게 지역민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거잖아. 그런데 어떤 지역 상인회장은 상인회에 가입된 게 아니면 무조건 못 팔게 해. 자리도 안 주면서 자기들끼리 장사하겠다고 다 쫓아내는 거야. 근데 무안은 안 그래. 자리를 못 구한 사람이 장사하러 오면 여기는 안 되지만 저기서는 된다고 다른 자리를 마련해 줘. 옛말에 내 집에 온 손님은 찬물이라도 먹여서 보내야 한다고 했어. 어디서 왔든 자리가 없으면 제공을 해줘야지. 야랑도 베풀 줄 모르고 멀리서 왔다고 무조건 쫓아 버리면 안 되는 거야.” 찬 바람이 들이쳐서 패딩을 꽁꽁 껴입고 있는 시장 상인이 꺼낸 말은 무안전통시장 안에 부는 따뜻한 바람과도 같았다. 그는 장사가 안돼서 힘든 상황에서도 ‘같이’의 가치를 말했다. 전통시장이 힘들다는 말은 늘 있었다. 전국의 지자체에서는 늘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어놓고, 재래시장의 위축은 매체들의 단골 보도 소재다. 안 그래도 대형마트에 밀려, 인터넷 상점에 밀려 힘듦을 면치 못했던 전통시장은 이제 코로나19 국면까지 맞았고 무안전통시장도 그 가운데 있다. 무안 전통시장의 번영은 지역사회가 늘 고민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모두가 지적한 천장 설비 문제다. 애초에 시장 이전 계획에서 노후화된 시설을 보완하는 목적이 컸던 만큼, 시설이 제 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전체적인 시장경제도, 무안 전통시장 내부도 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김민정 기자 저작권자 © 무안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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