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유통업자들의 ‘밭떼기거래’ … 해마다 농산물 시장왜곡의 원인
도매법인들의 견고한 카르텔 … 2019년 수수료 수입만 6천6백억원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진 농업의 현실 “농사는 도박이에요, 도박”

해제면 양배추 밭 
해제면 양배추 밭 

양배추가격 폭락으로 무안군 농민들이 시름에 잠겼다. 양배추가격이 작년 대비 1/3 수준으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29일 방문한 해제면 일대에는 아직까지 수확하지 못한 양배추들이 밭에 한가득 퍼져있었다. 

“계약재배를 했어도 계약한 가격대로 다 못준대요. (계약상인한테) 돈을 아예 못 받으신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가격이 너무 하락한 상태여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겪는 일이에요. 양파도 몇 년 전에 파동이 있었고, 계속해서 마이너스였잖아요.” 

해제면에서 양배추 농사를 짓는 A씨(50대)는 인건비라도 건지기 위해서 사겠다는 곳이 있으면 애써 기른 작물을 터무니없는 가격에라도 팔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양배추가격 폭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양배추 폭락사태에서 제일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과잉재배다. 무안군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관내 가을·겨울 양배추 재배면적은 415ha에서 972ha로 작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무안군청은 지난달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농가들이 양배추 소비감소와 인건비 상승, 미국흰불나방 발생에 따른 생산비 증가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에 양배추 사주기 운동, 양배추 주산지 품목 지정을 건의하는 등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이하 aT) 도매시장법인 거래정보분석에 따르면 2020년에 특품기준 8kg 15,569원이었던 양배추가격은 올해 10월 26일 기준 6,659원으로 하락했다. 이마저도 10월 초에 비하면 오른 것이다. 10월 5일 기준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양배추 도매가격은 3,918원이었다. 전년도 같은 날의 가격보다 14,000원 가량이 낮다. 

가격하락으로 인한 타격은 계약재배를 한 농민들조차 비껴가기 힘들다. 양배추가격의 폭락으로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계약을 맺은 기존금액보다 낮은 수준으로 값을 다시 책정하거나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잠적해버리는 업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소위 ‘밭떼기 거래’라고 불리는 포전매매계약. 포전매매란 밭작물을 밭에 나 있는 채로 몽땅 사고파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포전거래는 파종을 하기 전에 계약을 맺는다. 농민과 포전거래를 맺는 대형 유통업자들이 농산물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산지물량을 싹쓸이해가는 유통업자들이 손쉽게 산지폐기를 선택하기 때문에 해마다 반복되는 피해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가격이 매번 불안정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유통상인과 포전거래를 택하지 않기도 힘든 일이다. 

농민들이 농산물가격 불안정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비단 이번 양배추사태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양파가 킬로그램당 5백50원으로 폭락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양파주산지인 무안군에 5억 2,500만원을 투입해 수급안정을 위한 시장격리를 실시했다. 해마다 벌어지는 농산물 산지폐기도 이러한 ‘시장격리’ 조치의 일환이다. 일정기간 저장이 가능한 작물들은 창고에 비축해둘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작물들은 폐기처리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애써 기른 농작물들을 갈아엎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매번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aT가 안정적인 농산물 수급과 가격 조절을 위해 지난해 들인 돈은 4,800억원. 올해 국정감사에서 aT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농산물 수급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농림식품축산부 역시 근본적인 농산물 수급과 가격보장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산지폐기’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면 한번 이상은 겪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지자체와 정부에서는 농산물 팔아주기 운동부터 산지폐기까지 재원을 투입해 농민들의 손해를 보전하고자 하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무안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B씨(40대)는 매번 벌어지는 농산물 수급조절 문제에 대한 예방적인 대책이 없음을 지적했다. 
“정확한 데이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유통구조나 농업구조 속에 없어요. 아직 실험단계지만 양파 의무자조금이라는 것이 양파생산자협회와 농협이 참여해서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의무자조금이든 이력제든 어디 농가에서 뭐가 심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야 말이죠. 쌀은 면적이 더이상 늘어나지 않는 고정적인 구조인데도, 저쪽 통계청에서는 20퍼센트가 늘어났다 하고, 어떤 곳에서는 5퍼센트가 늘어났다 하고. 농민들이 뭐가 얼마나 나왔는지 알 수가 없는 구조에요.” 

“농민들도 알아요. 작년에 비싸면, 올해 많이 심을거라는 걸. 그런데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되는 점이 있거든요. 보통 농민에 따라 서너가지 주요 품목이 있을건데, 가격이 항상 불안하고 기준점이라는 게 없다보니 그나마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데이터가 작년 가격이잖아요. 이걸 농민의 잘못이라고 하는 말들도 많은데, 사실 농민들의 잘못만은 아니에요. 농산물 가격 변동폭이 없으면 괜찮은데, 변동폭이 너무 심해요. 농사를 꾸준히 해도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바닥을 치고, 어쩔 땐 괜찮고, 이런 구조가 있어요.” 

농업은 국민의 생존권과도 관련된 1차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밭을 일구는 농민들은 늘 불안정한 상황에 시달려야 한다. “농사는 도박이에요, 도박.” 무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은 농사가 도박과도 같다며 가격이 특히 불안정한 밭농사에는 뛰어들고 싶지도 않다고 질색을 표했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농사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가는 현실이다. 

가락시장 농산품 도매현장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아카이브 
가락시장 농산품 도매현장 / 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아카이브 

1년 내내 밭을 일구어도 작물을 키우는데 들어간 생산비마저 벌기가 힘든 농민들이 수두룩한 데에는 불공정한 농산물 유통과정도 끼어있다. 농민은 키운 작물을 유통업자에게 맡긴다. 그 유통업자는 작물을 싣고 도매시장으로 향한다. 이 도매시장에서 농산물의 가격이 결정된다. 

법적으로 농산물 경매권한을 받은 도매법인들은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을 위탁받아 경매에 내놓는다. 농산물을 구입할 중도매인들이 경매사에게 가격을 제시하면 최고가에 낙찰하는 방식이다. 전국에는 세금을 들여 지은 32곳의 공영도매시장이 있다. 그러나 같은 날 출하한 같은 품질의 농산물이라도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지기도 한다. 도매법인과 경매사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더군다나 농민들이 1년여 품을 들여 지은 농산물의 가격이 1초만에 결정되는 기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KBS광주방송총국의 보도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서부도매시장에서는 실제 경매도 없이 쪽파의 가격이 헐값에 결정되었다. 범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것은 경매수수료를 떼어가는 도매법인과 유통업자들이고, 농민들은 고스란히 피해만 떠안아야 한다. 

기존 경매제도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시장도매인제도’다. 시장도매인제도는 생산자의 출하선택권을 확대하고 유통단계를 축소시키기 위해 국내에서는 2004년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시장도매인제도는 가격의 변동폭이 높은 경매제와는 달리 출하자와 시장도매인이 사전에 물량과 가격을 협상하기 때문에 기존 제도보다 안정적인 가격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제도의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도매법인들이 농산물 도매로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은 6천6백억원. 농민들의 농산물에 기대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이 법인들은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농식품부 출신의 퇴직관료들은 도매시장법인협회에 들어간다. 협회에 들어간 퇴직관료들은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법률 자문을 맡는다. 또한 농업관련 신문에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쏟아붓는다. 협회의 광고비를 받는 신문사들은 현 농산물도매제도의 문제에 대해 균형있는 보도를 하지 못한다. 도매법인들은 2020년 기준 5년 동안 40억원이 넘는 광고비를 집행했다고 한다(KBS 시사기획 ‘창’ 311회, 농산물 가격의 비밀). 

무안군청은 이번 양배추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재배농가들을 위해 포전정리비를 지원하는 안을 내놓았다. 105ha에 대한 포전정리를 지원할 계획이며, 지원금을 600㎡당 50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번 지원사업에는 총 7억 8,800만원(군비 6억 2,500만원)이 투입된다. 지자체가 농민의 피해에 발벗고 나서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근본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뒷북치기에 급급하는 방식이 아닌 근본적으로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농업정책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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