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 앞 10년째 지켜온 찻집 … 한가할 때는 바느질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가게주인의 철학이 담긴 곳

삶의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도달하는 곳은 범상한 초연함과 단순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위대하지도 않고, 근사하지도 않은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에야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것일까. 때로 어떤 가게에서는 가게를 일구어 온 주인의 인내심이 손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카페 ‘산들’은 주인 김명학(64) 씨의 그런 연륜이 재치 있게 묻어나는 가게다. 산들은 청계면 목포대학교 앞에서 2014년에 문을 열었다. 올해로 10년째가 된 셈이다. 이곳은 카페보다는 찻집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가게에서는 생강 냄새가 나고 창가에는 다육식물들이 햇빛을 맞으며 서 있다. 작은 공간에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고 드문드문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같은 옛 노래가 들린다.

가게를 방문했을 때 중년의 손님 두 사람이 가게에서 나오고 있었다. 김명학 씨는 방금 나간 손님들이 떠난 자리에서 찻잔을 정리하고 있었다.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자 주인은 의아한 얼굴로 “메뉴에도 없는 건데,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었다. 

그는 카페가 대학가 앞에 있는데도 젊은 손님의 수는 적다고 말했다. 주로 교수나 조교들이 많이 방문하는 한편 유일하게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은 국문과 학생이다. “이상하게 국문과 학생들이랑 여기가 잘 맞나 봐.” 주인의 웃음 섞인 말씀이다. 

나이 든 손님이 많은 만큼 카페에서 가장 잘나가는 메뉴는 대추차와 생강차다. 오미자, 청귤, 모과, 레몬, 탱자 등의 생과들도 준비되어 있다. 생과로는 차를 비롯해 라떼나 에이드, 주스, 스무디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음료에 들어가는 생과는 모두 주인 김 씨가 직접 만든 재료들이다.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전화로 누군가가 복숭아 에이드를 비롯한 생과 음료 여러 잔을 주문했다. 김 씨는 30분 전부터 미리 음료를 만들기 시작하며 단체 주문량을 준비했다. 가게를 열게 된 경위를 묻자 그는 손을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원생활을 하며 오랫동안 차 마시는 취미를 가지고 있던 김 씨는 “차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라면 스스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야망이라든지, 내가 이루고 싶은 욕망이 없더라고. 그런데 그게 있다면 저기 멀리를 보느라 지금 여기에 집중을 못할 거야. 지금, 여기. 그러니까 여기 카페는 내 소원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요. 하지만 젊으면 이렇게 못할 거야. 절박하게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는 음료에 컵홀더를 씌우고 캐리어에 담는 일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말대로 김 씨는 아홉잔의 주문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김 씨는 한가할 때 가게 안에서 바느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에게 바느질은 지금 여기에 몰두하게 하는 일이다. 꽃병 아래, 계산대 위, 창가 등 가게 곳곳에는 김 씨가 이곳에서 보내는 순간에 몰두한 흔적이 남아있다. 김 씨는 계산대 위쪽 선반에서도 바느질거리를 한아름 꺼냈다.

“이것들이 뭐가 될지는 몰라. 하다 보면 뭐가 될 거야. 아니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조각들은 이어져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돼요. 나는 바느질을 하고 있을 뿐이지.”
가게 안 조각보들은 완성품이기도 하고 미완이기도 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그저 그 상태 그대로 놓여 있다.

“어떨 때는 고민이 되기도 해. 어느 날 내가 갑자기 ‘뿅’하고 사라지면 어떡하지? 그때 누가 나의 이런 이력을 들여다보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그걸 염려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잖아. 어떤 사람이든지 살고 나면 흔적이 남지. 돈을 남기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흔적이 쌓여가니까.”

그래서 김 씨는 차를 만들고 과일청을 담그고, 효소를 만들고 다육식물을 기르고 바느질을 하면서 이 공간에 계속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과 같이 초연한 태도로 삶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 안에 있던 편견을 발견했다. ‘좁은 가게에서 오래 머물면 갑갑하지 않을까’, ‘커피에는 전문가가 아닌데 괜찮을까’ 같은 걱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쌓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며 점차 이 걱정이 지레짐작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김 씨는 바느질을 하며 자기만의 경쾌한 리듬을 찾았고 손님들은 그가 내린 커피를 마시려고 가게를 찾아온다.

“힘든 것과 싫은 것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어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건 해. 경험하다 보면 그것을 구분하게 돼요. 경험하기 전에는 짐작으로 ‘이러면 이렇게 될 거야’하고 생각만 하다가 위축돼요. 그러면 남에게도 나와 같은 잣대를 들이대려 하고. 그것이 타인을 힘들게 하고 자기도 힘들게 해.”

편견이 깨지니 숨통이 트인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하든지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김 씨가 음료를 만드는 틈을 타 가게 안에서는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하는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아직은 어리고 자꾸만 슬퍼지고 갑자기 울고 싶어지면 어떤가. 어지럼 속에서 뱅뱅 날아가다 보면 ‘산들’과 같은 바람을 만나 느긋하게 삶의 한 지점에 내려 앉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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