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경력의 손맛과 정감 … “나는 보통 할머니가 아니여!”
손님맞이 비결이 입담이라면 반찬 맛의 비결은 과일양념

“장조림이 먹고 싶냐? 나 바빠서 장조림 못 해. 장조림은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이놈아.”

무안읍 중앙로 뒷길, 작은 반찬가게가 있다. 이름은 함평상회. 이곳은 함평에서 온 양양(78) 할머니가 57년 된 손맛과 정감을 담아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양양 할머니는 말씀 끝마다 “저리가, 이놈아”를 붙이면서도 가게를 찾아오는 이들을 살뜰하게 맞이하신다. 할머니의 거침없는 손맛과 입담은 반찬을 먹는 이의 몸도, 대화를 나누는 이의 마음도 개운하게 한다.

양 할머니의 고향은 함평이다. 결혼한 뒤 무안으로 왔고 무안에서 장사를 계속했다. 그렇게 장사를 한 지 어느덧 57년째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반찬가게와 과일가게를 함께 했지만 허리가 불편해지면서 과일 장사는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이전 가게 옆 터에서 새로운 반찬가게를 연 지 2개월째, 양 할머니의 함평상회는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김치와 젓갈을 담그신다. 정성을 들인만큼 가장 인기가 많은 반찬도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다. 그러나 함평상회에는 김치 못지않은 맛을 자랑하는 것이 있다. 바로 양 할머니의 입담이다. 양 할머니는 거침없는 말솜씨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옆 가게 상인들도, 가게 앞 시장골목을 지나치는 할머니의 친구들도 함평상회 앞에서는 꼭 한 마디씩 할머니에게 말을 붙이곤 한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작은 가게에 할머니 너댓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양 할머니와 친구들께서는 작은 평상에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TV를 보며 왁자지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도 손님이 가게 앞 매대를 어슬렁거리면 양 할머니는 “어이, 나가요!”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은 가게가 한산하냐고 묻자 할머니는 짐짓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나는 친구 많아. 저번에 너도 딱 봤지, 할머니 친구 많은 거? 그런데 오늘은 친구들이 없어. 그런 날은 잘 없어. 나 바쁘거든. 할머니는 항상 바빠. 지금부터 배추도 담아야 돼, 이놈아.”

인기가 많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가게 안에는 친구들이 가지고 온 선물로 가득했다. 가게 한쪽 선반에는 두루마리 휴지와 크리넥스 티슈, 고무장갑 같은 생활용품으로 채워져 있다. 양 할머니는 ‘집들이’ 선물이라고 말했다. 과일가게를 접고 반찬가게만 새로 내면서 친구들이 가져온 선물이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가게 이력을 설명하시면서도 통쾌한 말솜씨를 뽐내셨다. “내가 장사를 57년을 했어. 무안으로 와서 장사를 무려 57년이나 했단 말이야.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할머니가 젊은 줄 아냐? 내 나이가 칠십여덟이야. 이놈아, 생각해봐라.”

그러면서 양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는 할머니는 보통 할머니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젊었을 때부터 착하고 바른 마음씨로 살아야 돼. 할머니는 거짓말 안 해. 너희들한테 좋게만 말해주지. 너도 남 모르게 남들 말하는 것을 귀 기울여 잘 들어야지. 영화를 많이 봐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아니여. 나는 보통 할머니하고 틀려, 임마. 어떻게 틀린 것인지 말을 하면 네가 알 거여? 김치 담그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할머니의 말씀 한마디마다 웃음이 오갔다. 손주 엉덩이를 두들기며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시골 할머니의 모습에, 분홍 고무장갑을 낀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사이 손님들과 할머니의 친구들도 가게를 찾아오셨다. 반찬가게에는 매일 밥 지을 시간이 없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온다지만 함평상회에는 연세 지긋한 노인들도 자주 찾아온다. 등이 굽은 할아버지 한 분은 김치를 사가셨다. 양 할머니는 손님과 시원스럽게 말상대를 하며 능숙한 솜씨로 반찬을 담고 비닐봉지를 묶었다.

항상 정성을 담아 반찬을 내고 손님을 맞이하니 인기가 많은 모양이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몰라, 인기가 많은지 아닌지 내가 알겠냐. 맛있으니까 잘 나가지.”하고 말씀하신다. 

손님맞이의 비결이 입담이라면 반찬 맛의 비결은 과일이다. 할머니네 가게는 김치가 최고 맛있고 양념에는 과일을 아주 담뿍 넣으니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자부하신다.

크고 빨간 대야에 거침없이 배추를 썰어넣고 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리는 모습을 보자 그 손맛으로 나올 음식이 가히 짐작되고도 남았다. 함평상회에서 산 김치와 오징어젓갈은 정말 시원하고 달콤해 ‘밥도둑’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김치와 젓갈류만 다루는 것이 아쉬워 조림반찬은 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버럭하시면서도 걱정을 이어가셨다.

“나 바빠서 장조림 못해. 장조림은 엄마한테 해달라고 해. 좋은 데 가서 밥도 먹고 다른 데 가서 지내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봐야지.”

잠시 뒤에는 가슴팍에 작은 카네이션을 단 할머니가 가게를 찾으셨다. 양 할머니는 “언니, 이리 오셔!”하더니 가게 안에 자리 한켠을 내주셨다. 양 할머니는 ‘언니가 왔으니 너는 인제 얼른 가!’하시면서도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양 할머니는 김치를 담그면서도 ‘어떤 아가씨가 인기 많은 아가씨인가’를 두고 대화를 주고받으셨다. 

양 할머니를 보니 한때 배우 김수미 씨가 명성을 날린 ‘욕쟁이 할머니’ 역할이 떠올랐다. 걸걸한 비속어를 남발해도 불쾌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애정마저 느껴지는 욕쟁이 할머니. 양 할머니가 꾸리는 함평상회에는 그런 강인함이 녹아있었다. 할머니가 만드는 반찬에도, 할머니가 건네는 말씀 한마디에도 갓 무친 김치에서 배어나오는 것과 같은 시원함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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