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읍 낙지골목 한켠 … 사람살이 쓴맛과 단맛 끓는 곳
“내 살은 내가 알아, 요리하다가 다쳐도 병원에는 안 가”

무안읍 낙지골목 한켠. ‘수산’이라는 간판을 달고서 달콤한 약재 냄새를 풍기는 가게가 있다. 가게 앞을 기웃거리니 출입구 바로 앞에서 팔팔 끓는 스테인리스 통이 보였다. 약재 향은 스테인리스 통 속 간장게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다. <해제수산> 이성심(65) 씨는 활활 타오르는 가스불에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넣어 함께 끓여 달인다고 했다.  

“간장게장을 끓이고 있었어. 여기에 약초가 들어가지. 헛개나무, 황기, 당귀, 대추, 밤, 느릅나무, 새송이버섯. 또 뭐가 있지? 다 잊어버렸네. 최근에 아팠더니 이제 기억이 잘 안 나.”

가스불 위에서는 게장에 사용할 약초장이 팔팔 끓고 있었다. 장이 끓는 스테인리스 통에는 그을린 자국과 찌그러진 흔적이 가득했다. 이성심 씨는 뜨겁고 무거운 통을 매일같이 지고 나르느라 종종 다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미끄러지는 바람에 화상과 타박상을 입었다며 흐르는 수돗물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다.

그가 일하다 말고 달인 장을 한 숟갈 떠서 내밀었다. 손가락 끝으로 장을 찍어서 먹어보니 과연 달큼하고 짭잘한 맛이 났다. 약재를 많이 넣는 만큼 맛이 훌륭해 서울에서도 택배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씨는 이것도 다 고생일 뿐이라며 슬픈 얼굴을 했다.

무안읍에서 장사한 지 17년
“몸이 성한 곳이 없어. 귀 한쪽도 잘 들리지 않고 시야도 흐릿하고. 이런 세상을 살아요. 그래도 가게를 할 때는 그나마 나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씩이 내 병을 덜어주더라고.”

해제에서 태어난 그는 21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무안읍에서만 장사를 한 지 17년이 지났다. 남편은 아침마다 바다로 나가 게와 낙지 등을 잡아오고 이 씨는 갓 잡아 윤기가 흐르고 싱싱한 재료들로 요리를 한다. 그러니 읍에만 나가면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 ‘음식 맛을 보려면 해제수산에 가야 한다’며 등을 떠민다고.

하지만 가게를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은 이곳이 어찌 음식을 잘하는 곳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거나 불편해하기도 한다. 해제수산의 독특한 가게 구조 때문이다. 출입문 바로 앞에 주방이 붙어있는 탓에 손님 자리로 들어가려면 주방부터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성심 씨는 이 때문에 투덜거리는 손님들도 음식 맛을 한 번 보고 나면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고 장담했다.

그런 손님 중에서는 벌써 10년이 넘은 이도 있다. 게다가 무안 사람도 아니다. 해제수산 음식을 먹기 위해 매년 서울에서 무안으로 내려오는 손님이 계신단다.
“벌써 십 년이 넘었어. 아마 이십 년 가까이 되었을 거야. 맛집을 찾아다닌다는 어떤 아저씨가 오셨더라고. 뭘 드시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낙지 호롱구이가 먹고 싶대. 그런데 다른 집은 다섯 개가 기본이라 혼자서는 아직 못 먹었대. 그런데 나는 손님이 해달라는 대로 해드리거든. 대신 한 마리는 어렵고 두 마리부터 해드려요, 이랬더니 냉큼 낙지호롱을 드시데. 그러고 다른 음식도 하나씩 시켜보더라고. 그때부터 일 년에 두 번씩 와서 먹고 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아니나 다를까 그 손님은 매년 개인 블로그에 ‘무안 해제수산’을 방문한 글을 올리고 있었다. 낙지호롱, 연포탕, 비빔밥 등등. 블로그에 쌓인 ‘무안 해제수산 관련 글’의 개수만큼 한 가게가 지나온 깊이와 연륜이 보이는 듯했다. 이성심 씨는 내친김에 낙지호롱구이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낙지는 원래 생으로 해서 먹지, 구이로는 잘 안 먹잖아. 구울 때도 양념에는 고추장을 잘 안 써. 그걸 내가 제일 먼저로 했어. 나는 호롱 양념에 파인애플이랑 과일도 넣고 간장에 고추장을 넣었거든. 그런데 엄한 사람이 방송을 타 버렸어. 그러니까 그때 주변에서 ‘언니, 왜 언니가 안 나오고’ 이러고들 난리가 났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웃음

이 씨는 대화하는 도중에도 뜨거운 통에 덴 손가락이 화끈거린다며 거듭 수돗물로 씻어냈다. 약국이나 병원에 가자는 요청에 꿈쩍도 않으신다. 그는 매일같이 아침 5시에 나와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한다며 고단한 일과에 익숙할 뿐이라고 말했다. 
“내 살은 내가 잘 알아. 요리하다가 칼에 다쳐도 병원에는 안 가. 그러지 않아도 이틀이면 아물거든.”

그래도 그의 음식을 찾는 이들이 많으니 그것이 마음에 위안이 되지는 않을까. 가게를 다시 찾는 손님들에게서 낙을 얻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이성심 씨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삶에 낙이 어디에 있겠어. 손님들은 그저 자기들이 먹어보고 좋으니까 또 와. 남한테 싫은 소리 안 듣고, 그러고 세상을 살아.”

그렇게 스테인리스 통에서 게장이 끓는 동안 몇 사람이 가게를 찾았다. 우편물을 건네러 온 집배원과 근처를 지나가다 들른 지인이었다. 이 씨는 잠깐 얼굴을 비치는 이들을 향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웃음을 던지고는 했다.

돌아가는 길, 이성심 씨는 작은 반찬통을 건넸다. 푸욱 끓인 게장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가 몇 마리 담긴 반찬통이었다. 그는 일회용기에 게장을 담았다가 곧 “이러면 국물이 담기지 않아 안 된다”며 다회용기를 꺼냈다.

“이거 갖고 가서 밥 먹어봐라. 여기 똥 먹고 이 짝은 다 따불고 이빨로 조근조근 씹어먹으면 돼. 국물이 담겨야 하니까 락앤락 통에 담아갔다가 다음에 가져와. 국물 갖다가 밥에 부어 먹을 때는 참기름 한 방울만 치고.”

떠나는 길에 해제수산의 달콤한 약재 냄새가 배웅하는 듯하여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다시 갖다주라’며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기를 건네신 마음에, ‘낙이 없다’면서도 모자람 없이 보이신 웃음에 어쩐지 받아드는 이의 마음도 약재처럼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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