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단골들이 자주 와. 뜨내기 손님은 별로 없지”
1993년 남도음식축제 참가한 뒤 TV프로그램 타며 유명세

몽탄면 사창역사 맞은편, 지붕 낮은 가게가 하나 있다. 삼겹살 짚불구이로 유명한 ‘사창짚불구이’다. 복원된 간이역 건물과는 도로 하나 사이로 마주보고 있다. 1988년에 가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는 주인 김권기(62)씨. 그는 가게 앞 좁은 노대에 앉아 그간의 이력을 설명했다.

“가게는 1988년부터 했어. 1986년에는 아시안게임이 있었지. 88년에 올림픽 할 때 열었어. 도중에 자리를 옮기고 쉬기도 했고.”

김 씨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가게 앞 도로에는 트럭과 소형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도로를 경유하는 차량을 제외하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 옛 사창역사는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만이 오가는 길에 김 씨와 인사를 나눴다. 가게 맞은편의 옛 기차역 옆에는 높은 누대가 놓여 있다. 그곳에서 동네 주민들 여럿이 모여 술자리를 벌이다 멀찍이서 김 씨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파란색 트럭은 꽁무니로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다 김 씨의 가게 앞에 정차하더니 창문을 내리고 알은척을 하기도 했다.

한적한 사창역 앞, 뜨내기는 오지 않아 
사창은 무안보다 함평에 더 가깝다. 옛 역사와 짚불구이 가게가 자리잡은 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함평 엄다면이 나온다. 그러니 이곳은 함평과 무안의 경계, 혹은 변두리에 있는 셈이다. 역이 운영될 적에도 기차에 탑승하는 승객 수는 적었다. 한적한 동네에서는 늘 이용하던 사람만 기차역을 이용했다. 그마저도 1985년에 문을 닫아버렸고, 김 씨는 기차역 앞 가게라는 좋은 자리 덕을 전혀 보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단골들이 자주 와. 뜨내기 손님은 별로 없지. 역이 있을 때도 여기에선 내릴 사람만 내렸어요. 맨날 오던 사람들만 오고. 지금 사창역을 관광상품처럼 해놓긴 했지만 이것만 보고 누가 오겠어. 근처 밀리터리 테마파크에도 유치원 아이들이 종종 견학을 오긴 해요. 그것마저 저기 뒤에 오는 소형 버스처럼, 이런 것들 한 대나 두 대가 와서 한 바퀴 돌고 바로 나가버려. 그것 외에는 군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하루 네 번인가 있고.”

그런데도 짚불구이를 맛보기 위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를 보고 멀리서부터 찾아온 이들이 많다. 한 번 온 손님들이 굳어 단골이 되기도 하고, 늘 오던 동네 주민들을 받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은 짚불구이 가게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열며 이곳을 회합의 장으로 사용한다.

“우리 동네 모임이 있거든. 여기 몽탄면에 옛날에는 몽탄중앙교, 북교, 서교, 남교 이렇게 네 학교가 있었어.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데 곧 중학교와 합쳐진다고 그러지. 나는 몽탄북교 출신이라 같은 학교 출신들끼리 모임을 하는 거야. 회원이 한 50명은 돼. 그 모임을 여기 식당들 돌아가면서 해.”

‘권기네 집으로 가시오’
인근에만 짚불구이 집이 세 군데나 있다. 동네 모임이야 가게를 번갈아가며 연다지만,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같은 음식을 하는 가게들이 이렇게 서로 붙어 있으니 저마다 나름의 요령을 갖고 있다. ‘우리 가게로 오시오’하는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내 이름을 대라고 했어요. 누가 묻거든 ‘권기네 집으로 가시오’ 이렇게 말해주라고 이르고. 그러면 손님들이 우리 가게로 와서 물어봐요. ‘권기네 집으로 가라던데. 권기가 아들이요, 누구요?’하면 ‘아니, 제가 깁니다’ 이러지.”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는 데다 가게 이력도 오래되었다. 김 씨는 그만큼 “이 음식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993년 남도음식대축제에 무안군 대표로 참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천 낙안읍성에서 남도음식대축제를 하잖아. 그때 무안군 대표로 나랑 부부식당이라는 가게 둘이 나갔어. 부부식당은 지금 사라진 가게인데 그곳에서는 세발낙지를 갖고 갔고 나는 짚불구이를 갖고 갔지. 그래서 무안군은 두 집이 한 부스를 잡았어. 그런데 낙지를 판 사람은 축제에서 300만원을 벌었는데 나는 43만원을 벌었어. 적자가 난 거야.”

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유일한 이점은 “우리 가게를 전국적으로 알린 것”이었다고 말했다. 축제에 참가하고서 한 번 공중파 TV에 소개되자, 다음부터는 한 해에 두어 번씩도 방송사에서 가게를 찾아왔다. 방송 3사마다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들, 이를테면 ‘생생정보통’, ‘6시 내고향’ 같은 곳에서 번갈아가며 ‘사창짚불구이’를 찾았다. 어느 때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 연결로 출연하기도 했다.

“TV 촬영은 긴장이 안 돼요. 다시 촬영하면 되니까. 하지만 라디오는 생방송이잖아. 시나리오 없이 술술술 말해야 하는데 말문이 턱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라디오는 하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먹고 했어.”

김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상 여러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김 씨도 몇 번 가게를 쉰 적이 있다. 한 번은 2003년에 무안읍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고, 다른 한 번은 지난해에 어깨 수술을 받았을 때다. 무안읍으로 가게를 옮겼을 적에는 “아무리 소문을 타도 장소를 옮기니까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래의 터전으로 돌아오자 다행스럽게도 그를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가 2003년쯤 무안으로 갔다가 다시 2013년에 여기로 들어왔네. 10년이라는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과거 손님들을 찾기 어려울 줄 알았어요. 그래도 손님들이 내가 다시 가게를 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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