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박관서 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박관서 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며칠 전에 회산백련지를 다녀왔다. 광대한 회산백련지에서 펄럭이는 연잎들의 향연이 마음을 차분하게 울렁였다. 마침 긴 오뉴월 장마를 마감하는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는 중이어서 일행들 모두 좋아했다. 끝없이 나풀거리는 연푸른 손바닥들이 마치 존재의 심연에서 올라오는 소식 같기도 했고 노래 같기도 했다.

도대체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풍경에 함께 섞여 두세 시간을 훌쩍 보냈다. 인의산을 배경으로 연신 푸른 손을 흔드는 연잎들을 등 뒤로 하고 돌아 나오면서 <2022 무안연꽃축제> 소식을 보았다. 이래저래 지역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동안 진행되어 온 무안연꽃축제에 대한 한계와 아쉬움 때문인지, 문득 연꽃이 아니라 연잎을 주제로 하는 축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꽃은 물려있다. 무수한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꽃이라는 실감을 얻기 위해서는, 근거리에서 보여주는 실제 꽃이어야 한다는 난점이 크다. 물론 전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꽃축제로 해서 형성된 행사의 일반화도 그렇지만, 쉽게 접근 가능한 지상이 아니라 수중에서 피고 지는 연꽃의 경우에는 특히 꽃의 실감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연꽃의 개화 시기가 한 여름이라는 점과 함께 이를 축제 행사의 일정과 시기적으로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실제로 작년에도 축제 기간이 열흘씩 연기되는 등 매년 행사를 진행하는 측에서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꽃축제에 정작 연꽃은 없고 축제프로그램만 남는 경우가 다반사로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듯이 올해의 무안연꽃축제 프로그램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점은 도드라진다. 무안이라는 로컬문화와의 반영을 위한 일정한 노력은 엿보이지만, 연꽃이라는 의미와 주제 그리고 회산백련지라는 장소성의 구현 등 지역축제로서 응당 지녀야 할 상관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온·오프라인으로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행사라고는 하지만, 도리어 인간과 인간의 대면접촉이 어려운 코로나 상황을 고려한다면 연꽃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내면적으로 즐기고 힐링하는 축제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처럼 연꽃과 축제의 실제적인 접촉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우연히 착상된 연잎을 주제로 한 축제 같은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원을 주제로 하여 자연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로써 성공한 <순천정원박람회>처럼 가칭 ‘무안연잎그린축제’ 같은 명칭으로 진행해보면 어떨까 한다. 물론 축제의 주제를 구현하는 매개물이 연꽃에서 연잎으로 바뀐 만큼 축제의 내용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축제가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대중적인 흥미와 관심의 집중이 아니라, 자연물에 대한 관조와 조응을 통하여 인간의 내면과 만나는 힐링과 문화예술프로그램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 내용을 개념적으로 짚어보자면 이러하다. 진흙탕이라는 하방과 연꽃이라는 고양의 중간 통로이자 매개가 되는 연잎의 특성에 맞도록 특별하고 흥미로운, 그 무엇보다도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담아내고 촉진하는 특성이 담긴 문화와 예술의 장이 되도록 하면 될 터이다. 

축제의 내용이 그러듯이 짧은 기간으로 묶여있는 축제 일정 역시 풀어야 한다. 예전에 시도했던 것처럼 연잎이 성해지는 6월부터 연꽃을 피우고 지는 8월까지라든가, 사라진 연잎과 연꽃을 기억과 마음으로 보여주는 축제의 빈 계절인 11월부터 1월까지를 더하여 진행하면 좋을 듯하다. 그린은 눈에 보이는 녹색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힐링으로 고양되어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회산백련지에 가득한 연잎이 그린과 만나, 우리의 마음결로 가득히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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