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이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현실, 다국적기업의 함정
사라지지 않는 잔류농약...땅과 하천 거쳐 우리 몸으로

‘메이팜’. 저항성 해충 및 난방제 해충을 방제하는 전문약제, 녹색 뚜껑에 우윳빛 병. ‘보로플루이드’. 붕소 결핍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품질 저하를 예방, 식물 발달에 필수적인 요소, 흰 뚜껑에 녹색과 오렌지색의 글자. ‘선두주자’. 오래가는 원예용 종합살균제, 병원균의 침입과 생장을 저해, 분홍색 뚜껑에 흰색 병.

메이팜, 보로플루이드, 선두주자. 이들은 어느 농약사에서 판매하는 농약 상표명이다. 농약사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랑과 초록, 분홍과 파랑의 원색으로 눈이 어지러웠다. 위험성을 경고하기라도 하듯 알록달록한 모양이었다.

농약사 안에서 커다란 철제 난로는 윙 소리를 내며 공기를 데웠고 덥힌 공기 중에는 독하고 매캐한 냄새가 떠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화려하고 공기는 답답하다. 조금만 앉아있으면 잠결에 ‘이상한 나라’로 와버린 것처럼 몽롱해진다.

상상과는 달리 살충제, 영양제 등의 화학약품에는 커다랗고 무시무시한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농약 병뚜껑은 종류를 구별하기 위해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한다. 흰색 뚜껑은 영양제, 녹색은 살충제, 분홍색은 살균제, 노란색은 제초제다. 또 모든 농약이 강한 독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고독성농약인 경우에만 포장지 하단 중앙에 백골그림을 그려 넣는다. 안전한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마스크‧보호안경‧장갑‧방제복 착용 등의 그림을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농약에는 미량이나마 독성이 있으며 잘못 사용하면 위험하다. 그러므로 농약을 제조하거나 판매‧구입, 살포할 때는 전문가가 정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현재 한국은 안전성이 확인된 약제만을 사용한 농약을 정식으로 등록했다. ‘농약잔류허용기준’을 마련해 사람이 일생에 한 식품을 섭취해도 전혀 해가 없는 수준의 농약을 법으로 규정했다. 2019년에는 PLS(Positive List System)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해서 미등록농약에는 잔류허용기준을 0.01ppm으로 일괄 적용했다. PLS 시행 이후, 국내에서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된 농약이 아닌 경우 위 기준을 초과하면 안전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얻는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우리는 결국 앨리스가 마셔버린 물약과 같은 교묘한 속임수에 걸려들기도 한다. 이것은 ‘농약은 위험하다’는 사실 뒤에 숨은, 그보다 더 위험하고 복잡한 속임수에 대한 문제다. 이 속임수는 지금의 농업, 곧 대량생산과 대량판매, 연작과 단일작물 재배, 대농의 득세나 농약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 풍조, 패스트푸드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먹거리 시장이 파놓은 함정을 말한다. 이들은 물약에 ‘독’이라고 쓰지 않는다. ‘날 마셔요!’라고, 마셔도 괜찮다는 설명서를 붙여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용감하게 이 물약을 맛보았다. 물약은 맛이 아주 좋았다. 마치 “버찌 타르트와 커스타드, 파인애플, 구운 칠면조, 땅콩사탕, 버터를 바른 따끈한 토스트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맛”과 같았다.

갖은 영양제와 비료를 사용한 음식 역시 잘 자라 튼튼하고 보기에 좋을뿐더러 맛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극미량이 남고, 아무리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화학약품은 여전히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농약잔류허용기준은 특정한 식품 하나를 대상으로 설정되지만 인간은 사는 동안 한 가지 음식만 섭취하지 않는다. 갓 지은 쌀밥에 남아있는 해롭지 않은 농약, 햄버거에 남아있는 농약, 여행지에서 맛본 야키소바나 라따뚜이, 빠에야에 남은 농약은 우리 몸속에서 평생 쌓인다.

인간 몸만이 아니다. 땅에 살포된 농약과 하천과 바다로 흘러간 농약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천에서 농약이 더이상 검출되지 않더라도 잔류농약은 그 속에 사는 생물의 몸으로 흘러간다. 플랑크톤에게 들어간 농약은 물고기를 지나 새, 개구리 등에게 연쇄적으로 발견된다.

한국은 국토개발과정에서 농지 확보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전체 국토면적이 좁은 만큼 대량생산을 통해 농산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비료사업이 크게 성공했고 단일 품목 재배와 연작, 대량생산이 농업문화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무안에서도 90년가량 되는 양파 재배기간 동안 많은 농지에서 연작을 했다. 길면 50년까지도 같은 토지에서 같은 작물만을 재배했다. 그러면 토지는 쉴 틈을 얻지 못해 지치고 만다. 인간은 병이 든 토지에 비료나 영양제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필수 영양을 공급한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집필할 무렵인 1960년대 미국에도 동일한 문제가 있었다. 미국은 경작지 감소에 따른 농산물 생산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화학약품 사용에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몇 해 후에는 10억 달러 가량을 잉여농산물 구입에 쏟아야 했다.

카슨은 인간이 먹거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자연이 가진 본연의 리듬을 듣는다. 단일작물 경작이나 연작은 자연의 기본 원칙이 아니다. 카슨은 이를 ‘기술자의 방식’이라고 부른다. 자연은 다양성을 선사했으나 인간은 이를 단순화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시행하는 제도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카슨은 이보다 더 나은 것, 이보다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이 속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지적인 생물이다. 그러나 수많은 화학물질의 남용은 인간이 지적인 균형감각을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는 방법은 자연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몇십 년, 몇 세대에 걸친 길고 야무진 시간이 인간에게도 필요하다.

낮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참 이상한 꿈이었노라며 차를 마시기 위해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것은 꿈이 아니다.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가 마신 차 속에는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알록달록한 빛깔의 화학약품이 들어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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