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 (The Bombardment, 2021) _ 조이유 주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5개월째다. 주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이 나오던 유니세프 광고에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만명도 넘는 아이들이 전쟁고아가 되어 열악한 시설에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러시아 병사가 우크라이나의 1세 여아를 성폭행했다는 믿기 힘든 뉴스를 보았다. 정말 지금이 2022년 맞나. 언제까지 어른들의 욕망으로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할까.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 <폭격>의 오프닝 자막이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 치하의 덴마크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덴마크 수도에는 나치의 정치경찰 게슈타포가 덴마크 레지스탕스를 잡아 고문하던 본부 ‘셸후스’가 있었다. 정보를 입수한 연합군은 셸후스를 비행 공습하는 ‘카르타고 작전’을 시행하는데 이때 영국군의 오폭으로 인근의 수녀원 학교인 ‘잔다르크 기숙학교’에 여러 차례 폭탄이 떨어진다. 학교에서는 소녀들이 수업중이었다.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학교를 향해 뛴다. 두려움과 아닐 거라는 믿음으로.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것을 보았다.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첫 번째 사망자가 발견된다. 피 묻은 조그마한 발... 가슴이 무너진다. 좀 전까지 노래를 부르던 소녀의 발인지, 앞니가 빠진 얼굴로 꺄르르 웃던 소녀일지 알 수 없다. 움직이지 않는 아이의 발 그 자체가 이미 형용할 수 없는 비극이다. 

“테레사 수녀님. 신이 연필을 떨어트리신 걸까요?”
수녀님 손을 잡고 지하실로 대피했던 소녀가 묻는다. 일전에 테레사가 아이들에게 ‘가끔 신은 떨어트린 연필을 줍느라 잠깐동안 세상을 돌보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 잠깐이 신에게는 몇 초이지만 인간에게는 몇 년이 되기도 한다’고 말해준 것이다. 붕괴된 지하실에 점점 물이 차오른다. 소녀의 질문에 신을 믿지 않는 인간일지라도 제발 하느님이 떨어트린 연필을 줍길 바랐을 것이고, 연필을 주워주지 못해 괴로웠을 것이다. 누구도 소녀에게 너의 희생이 불가피한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에 카르타고 작전의 실제 사망자 이름이 올랐다. 19명의 성인 사망자에 이어 ‘어린이 사망자’, 그 아래로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름이 올랐다. 총 86명의 이름 끝에 실제 기숙학교 학생들의 단체사진이 나왔다. 나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았는데도 낡은 흑백사진 속 어린 소녀들의 웃음이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가 <폭격>을 보며, <안네의 일기>,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느껴야 하는 것은 그뿐이다. 지구상에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안 된다는 것. 아이의 죽음은 전쟁이 절대악임을 증명하는 가장 큰 논리이자 어쩌면 유일한 논리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 앞에 우리는 그저 옆 나라 시민일 뿐이다. 그럼에도 계속적으로 전쟁중단과 평화를 외쳐야 한다. 이제 대부분 치솟는 기름값의 원인을 떠올릴 때 말고는 전쟁을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만이라도 전쟁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을 떠올려야 한다. 나는 지난 2022 대선에서 부디 외교주도권, 강경 대북정책 따위의 말로 전쟁의 명분을 가볍게 들먹이는 이들이 힘을 얻지 않길 바랐다.

이제는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드높은 아파트와 반려동물들을 위해서라도 평화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않길 바란다. 전쟁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악을 옹호하는 명백한 악행이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반복되었고 그 총구는 언제 우리 아이들을 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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